회고록을 쓸 생각을 아니었지만 써놓고 보니 1940년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20년, 그러니까 석두(夕杜)가 10대에서 20대 후반에 이르는 시기, 전쟁의 광기와 사회적 대립과 갈등의 격변기를 겪으면서 그래도 살아남은 한 문학청년의 회고록 같은 성격이 없지 않다.
석두는 주관적이라기보다는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자신을 조명하려 했다. 석두는 때로는 좌파인 것 같고, 때로는 우파인 것 같다. 그러나 석두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 좌와 우에 양다리 걸친 사이비라고나 할까. 좌우와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갈등 속에서 언제나 반동분자요, 수정주의자였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시대에 수정주의자는 반동분자요, 좌우 양 진영의 숙청 대상자였다. 그래서 석두는 위장자가 되어 어렵사리 살아남았다고 할수 있다. 반평생을 위장자, 수정주의자로 살아남았으니 할 말이 없다. 공산주의는 소멸했고, 시대착오적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권이 지구상에 국가사회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때로 얼굴을 내민다.
반동분자로 규탄 받고 숙청되던 수정주의자가 창조적 힘을 발휘할 때다. 석두는 생각했다. 오늘의 러시아가 건재한 것은 고르바초프라는 수정주의자가 있었기 때문이요, 오늘의 중국이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 살아남은 것은 등소평(鄧小平)이라는 수정주의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는 지켜야 할 절대적 가치이지만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는 국민이 되었건 인민이 되었건 그 시대의 백성들을 위해 끊임없이 수정되어 나가야 한다. 낡아가는 이념의 포로가 되지 않고 수정사회주의, 수정자본주의의 길로 나아아가야 한다고 석두는 생각했다.
20세기와 21시에 걸친 위장된 3차 대전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온 국민의 통일에의 염원은 간절하지만, 흡수통일이나 전쟁을 통한 통일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 성급한 바람은 21세기에 또 다른 6.25의 비극을, 한반도의 비극을 가져올지 모른다.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북반부 정권에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수정사회주의를 실천하는 지도자가 나오고, 대한민국에 국민을 위해서는 수정자본주의를 서슴치 않고 선거공약도 과감하게 수정해나갈 수 있는 대통령이 나올 때 자연스럽게 통일의 기운이 싹틀 것이라고 석두는 주장하고 싶었다.
석두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수정주의자, 시대의 물결에 순응하는 수정주의자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싶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나라의 경제정책의 하나의 원론(原論)이랄까 밑그림이다. 나라와 시대에 따라서 나라 살림을 제대로 꾸려가기 위해서 서로 수정하고 쌍방의장점을 수용하면 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대립하는 이론이 아니라 서로 접근하고 서로 수용해야 한다. 말하자면 탈이념(脫理念)의 수정주의 시대가 온 것이다. 수정주의자를 북한에서는 반동분자로 몰고 남한에서는 친공분자로 몰던 시대는 끝맺음을 해야 한다. 서로 다른 중도 정치의 노선을 남과 북이 서로 수용할 때 통일의 꿈은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수정주의자 석두는 생각했다.
2020년 4월
얼굴박물관 작업실에서
소석 김정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