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두는 서상덕 의원을 따라 서울로 가기 위해 목포로 내려왔다. 육로가 불안하니 배를 타고 목포에서 인천으로 가서 인천에서 서울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목포에서 인천까지 여객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 의원 친지 중에 어선을 몇 척 가진 선주가 있어 그 선주의 호의로 백 톤짜리 어선인지 화물선인지 알 수 없는 배를 타고 인천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백 톤짜리 배는 생각보다 꽤 크다고 생각되었다. 배에는 서의 원을 따라가는 일행이 7, 8명이 되었고, 그밖에도 인천으로 가는 승객이 10여명, 선장과 선원 해서 30명 가까운 사람이 승선을 했다.
목포항을 출발했을 때는 초가을의 좋은 날씨에 모두 기분이 좋았다. 석두는 큰 트렁크 하나와 손가방을 들었다. 큰 트렁크에는 서울에 가지고 가면 값이 세배나 된다면서 좀 무겁더라도 갖고 가라고 해서 광목 두 필을 넣어서 갖고 간 것이다.
큰 트렁크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석두의 기분 같아서는 어디다 버리고 싶었으나 형님에게 꼭 갖다 주어서 생활비로 보태 쓰라는 것이니 소중히 서울까지 운반해 가야한다.
배는 속도가 결코 빠르다고 할 수 없으니 통통거리며 칠산(七山) 바다를 기분 좋게 달리고 있었다. 배가 달리는 방향으로 오른쪽이 영광, 법성포이고 왼쪽에는 위도섬이 멀리 보였다. 바로 이 칠산 앞바다에서 많은 조기가 잡혀서 성수기에는 위도를 중심으로 파시(波市)가 선다.
석두는 외할머니가 보내줘서 밥상에 떨어뜨리지 않고 먹었던 그 유명한 영광굴비가 이 칠산 바다에서 잡힌다는 생각, 최인규 감독의 파시(波市)라는 영화를 생각하면서 감회에 젖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운항을 멈추고 갑판 위가 어수선하다. 배가 얕은 뻘밭에 좌초된 것이다.
칠산 바다는 원래 얕은 뻘밭으로 이루어져 있어 고기떼들이 서식하고 이동하며 연평도로 올라가는 조기떼들도 이 칠산바다를 통과할 때 알을 밴다고 한다. 말하자면 조기의 청춘기가 칠산바다를 통과할 때라는 것이다.
이곳 바다를 잘 알고 경험이 많은 선장이면 칠산바다의 얕은 뻘밭을 피해서 항해를 해야 하는데, 목포 앞바다, 다도해에서 주로 놀던 이 배는 칠산바다의 뱃길을 잘 몰랐다고나할까? 그래서 좌초된 것이다.
바다 한복판에 갇혔으니 어쩌나 했는데 지금 썰물이니 밀물이 되면 수심이 깊어져서 갈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썰물이 밀물로 바뀌어 배가 다시 움직이려면 열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바다 한복판에서 해가 저물고 수평선 저편으로 태양이 가라앉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바다의 아름다움에 홀려 바다로 잘못 날아든 나비를 주제로 한 김기림의 시를 생각하며 석두는 나비의 날개라도 있다면 해가 저무는 수평선의 노을 속으로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상에 젖기에는 항로를 잃고 좌초한 선상에 있다는 것이 한심스럽게 생각되었다.
석양의 노을 속에 항로를 잃고 좌초한 배는 동서의 편싸움에 휘말려 전쟁터가 된 조국을 상징한 것처럼 느껴졌다. 잔잔했던 바다도 해가 지고 어슴푸레해진 하늘에 만월에 가까운 둥근 달이 나타나자 바람이 몹시 불고 검은 구름이 순식간에 달을 가렸다.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석두는 하단부에 있는 선창에서 잠이 들었다. 배가 심히 흔들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뱃멀미를 호소했다. 밀물이 들어와 배가 움직이게 되었으나 파도가 너무 심해 일단 위도로 상륙한다는 것이다. 법성포나 위도 어느 한곳에 배를 대고 바람이 가라앉고 파도가 잔잔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법성포로 가느냐 위도로 가느냐 하는 것을 서 의원과 선장이 상의를 했는데, 빨치산이 드나드는 법성포보다 위도가 안전할 것 같아서 위도로 상륙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배는 새벽녘에 위도에 도착했다. 선원을 빼고 모두들 처음 경험하는 뱃멀미에 녹초가 되었다. 그러나 그냥 상륙할 수는 없었다. 위도가 현재 어느 쪽 지배 하에 있는가를 살피고 상륙해야지 빨치산이 있다면 불에 뛰어드는 격이다. 그래서 조그만 백사장이 있는 어촌을 상륙지점으로 삼았다. 선착장에 배를 대고 서 의원 비서와 경호원이 먼저 상륙해서 마을을 살피고 나서 상륙하기로 했다. 경호원과 비서는 아무도 없고 집집마다 텅 비어 있다는 보고를 했다.
“그럴 리가.....?”
서 의원은 의아해 하면서도 하여튼 상륙해보자고 해서 모두 상륙했다. 작은 마을에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바다는 파도가 거세고 밀물의 최고 수위인 듯 바닷물이 부풀어서 바다에 가까운 집의 부엌까지 바닷물이 밀려왔다. 모두 겁을 먹고 높은 곳으로 달아났다.
일행 중에 수염을 기른 목사가 있었는데, 그는 바닷물이 들락날락 하는 제일 얕은 곳에 있는 집의 마루에 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저 목사님 바닷물에 쓸려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빨리 끌어내자고 수다를 떠는 사람도 있었다. 석두는 이게 교과서에 나오는 해일이라는 게 아닐까 하고 불안했다.
그렇게 모두 수선을 떠는 사이 바다의 수위가 내려가고 파도도 모래사장까지 밀려왔다. 연중 바닷물의 수위가 가장 높이 올라가는 날이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마을사람들도 어항이 있는 건넛마을에 피신을 했다가 돌아왔다. 석 달 전에 인민군이 왔을 때도 바로 이 어촌으로 똑같은 크기의 배를 타고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 인민군이 오늘 줄 알고 일단 어항이 있는 건넛마을로 피신을 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서 의원 일행과 석두는 3일 동안 위도에 묶여 있었다. 하늘은 맑은데 바람이 은근히 거세고 파도가 높아서 톤급의 배로는 출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석두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비바람이 불어올 것 같아서 출항을 못하고, 그 비바람이 몰아치는 동안에는 물론 출항할 수 없고, 그 비바람이 가라앉은 다음에는 그 사이 거칠어진 파도가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하니 출항을 못하고....... 바람이 잔잔해져도 이미 거칠어진 바다의 파도가 진정하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날씨는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가을날씨를 회복했으나 파도는 여전히 높았다. 멀리 바라보이는 수평선이 석두가 알고 있는 직선의 수평선이 아니라 낮은 산맥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바다는 바람 불 때 못지 않게 바람이 잔잔해진 뒤 여파(餘波)가 무섭다고 한 선원이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