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공원은 인천 중구 소재 응봉산 위에 있다. 산이라고 해 봐야 해발 백 미터에도 못 미치는데다 사방이 시가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산 전체가 공원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구한말 산 남쪽과 서쪽 기슭에 조계지(租界地)를 형성하고 있던 미 ․ 영 ․ 러 ․ 청 ․ 일 등 여러 나라의 공동 출연과 러시아인 토목기사의 설계로 조성된, 국내 서구식 공원의 제1호이다.
지금 맥아더의 동상이 있는 동쪽 봉우리와 한미수교 백주년기념탑이 서 있는 서쪽 봉우리를 조금씩 깎아내린 다음에 중간 능선으로 연결시켜 다듬은 형국이다. 당시에는 만국공원, 일제(日帝) 기간에는 서공원으로 불려 지다가 맥아더의 동상 건립과 동시에 지금의 자유공원으로 개칭되었다 한다.
시가지 한복판의 야트막한 구릉에 지나지 않지만, 올라서면 황해 특유의 아슴푸레한 해면과 그 위에 옹기종기 떠있는 월미, 작약, 영종, 팔미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정겹고, 바다를 건너오는 바람결이 상쾌하다. 거기에 공원의 연륜만큼 높게 자란 플라타너스, 히말라야시다 등 서양 수종들과 느티나무, 팽나무 등 동양의 교목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싱그러운 녹음을 드리운다.
겨우내 한산하던 공원은 벚꽃과 함께 활기를 되찾는다. 일본인들이 심었고 그 뒤에도 보태어 심어졌을 벚꽃이 폭포수처럼 공원을 뒤덮어 오면, 서쪽 봉우리를 감아 도는 벚꽃 터널에는 해삼 멍게 리어카가 늘어서고 낮술에 얼굴 붉힌 상춘객들의 목청 높은 노래 소리도 흘러든다.
저만치 건너다보이는 월미도마저 우람한 벚꽃 더미로 두둥실 떠올라서 공원의 봄 축제를 장식해 올 때쯤이면, 유서 깊은 자유공원의 방만한 자유가 꽃과 함께 만개하는가, 두어 잔 소주가 힘겨운 아가씨들의 대담한 낮잠이 꽃그늘 벤치 위로 등장하기도 한다.
벚꽃이 지고 신록이 피어나면 공원은 본연의 휴식처로 바뀌면서 차분한 분위기로 돌아선다. 그러나 바다가 열려있는 서쪽 기슭은 힘 좋은 노인네들의 가무장이 되면서 소란스러워진다. 낙조의 조망이 일품이라고 전하는 석정루(石汀樓)와 연오정(然吾亭)에 성능 좋은 앰프를 틀어 놓고 남녀가 어울려 노래하고 춤을 춘다. 고스톱, 윷판에 꽹과리와 장구까지 섞여들기도 한다.
거기에 비해 동쪽 끝은 물밑처럼 잠잠하기만 하다. 조류원(鳥類園)이 있는 기슭에서 맥아더동상 주변까지 그늘마다 앉을 자리마다 노인들이 모여앉아 장기를 둔다. 두 사람이 마주앉은 장기판을 서너 명이 둘러서서 관전한다. 백 명도 넘는 장기꾼들이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미동조차 않는 것 같다.
중간의 광장과 산책로는 나들이 나온 주민들과 외지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그들은 동상과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광장 난간에 기대거나 산책로 옆 벤치에 앉아서 외항선들이 정박 중인 도크와 그 너머 바다를 조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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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 인천자유공원의 명물로 왼쪽에 시계탑과 가운데 멀리 맥아더장군 동상이 보인다 / (下) 인천자유공윈의 학도의용대 호국기념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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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이로 팔짱 낀 연인들과 유모차를 앞세운 가족들이 드나들고, 그들이 뿌려대는 모이를 좇아 구름 같은 비둘기 떼가 광장으로 내려앉는다. 거기에 조선족 약장수들의 난장터가 열리고 깃발을 앞세운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찾아들면서, 전전 세기말 격동의 유서를 품고 태어났던 만국공원은 오늘날 만인의 자유로운 쉼터가 되는 것이다.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되어 자유공원을 자주 찾는다. 몸과 마음이 찌뿌드드하거나 무료할 때면 공원으로 올라가서 바람 앞에 몸을 세운다. 푸른 그늘 속으로 불어드는 해풍이 상쾌하기도 하지만, 나를 알아보는 시선이 있을 리 없는 그곳의 거리낄 것 없는 분위기가 더욱 좋다.
백 년도 더 자란 나무 밑동에 등을 두드리기도 하고 바다를 건너오는 바람 앞에 전신을 흔들어도 좋다. 돌계단에 엎드려 팔을 굽히고 펴다 보면 어느새 심신이 가벼워져서, 콧노래를 흥얼거려도 무방하고 외국어 독본을 소리 내어 읽어도 누구 하나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간혹 점심에 곁들인 반주의 취기로 벤치에 기댄 채 코를 골기까지 해 봐도, 그런 나의 자유는 조금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곁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스쳐가는 사람들이 나와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들의 모습에 마음 쓰지 않는다. 장기만 두는 노인들의 모습이나 꽃그늘에 낮잠 든 여인들의 자태가 거리낄 리 없고 서쪽 기슭의 꽹과리 소리도, 조선족 약장수들의 소음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고객을 다투는 커피장수 아주머니들의 육탄전마저도 나의 눈과 귀에는 조금도 거슬리지 않는다. 도리어 정겹기까지 하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그들 자유의 한 형태일 테니까. 그러면서 재래시장의 적당한 소란 같은, 삶의 활기일 수도 있으므로……
하늘 까마득한 활엽수 그늘 속에 앉아서 항구를 떠나가는 외항선들을 지켜보는 시간이 감미롭다. 조심조심 갑문을 빠져나간 선체가 외양(外洋)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면 장성일발(長聲一發)의 고동을 우렁차게 울린다. 동시에 스크루가 물살을 찬다. 자신의 침로를 전속으로 항진할 것이니 항로 주변의 배들은 주시하라는 선언이다. 마치 모체의 자궁을 갓 빠져나온 신생아의 고고지성(呱呱之聲) 같다.
이국에의 꿈을 지닌 채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애수의 바람결에 날리면서 푸르른 해원으로 들어서는 그들의 모습은 내게 있어 그리움이다. 제법 긴 시간 저편의 아스라한 추억이다.
그러나 끝내 풍만한 여인의 둔부를 닮은 선미(船尾)를 바다와 하늘 사이로 감추면서 사라져 간다. 하늘과 구름, 수평선과 파도뿐인 그곳에서 그들은 외로우리라.
그러나 한편, 관심사라곤 태양의 고도, 별자리의 위치, 바람과 주류뿐인 그곳에서 그들은 자유로울 것이다. 바다는 놀라운 효능으로 땅 위의 일들을 잊게 해 주고, 스콜이 무성한 이국항구로 치닫는 그들의 꿈은 밤마다 파초 속잎처럼 피어날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