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홍 교수가 암으로 죽어간다.
외과의(外科醫)의 집도마저 무용해진 상태를 그대로 덮어 둔 채, 평생을 몸담았던 대학이 건너다보이는 바닷가에서 마지막 시간만을 기다리며 사위어 간다. 야생마처럼 내달리던 육척 거구의 체력도, 한 번의 잠수(潛水)로 사오 분을 견디던 장기(臟器)의 성능도 한 가닥 병마 앞에서는 무기력하기만 해서 육십도 못 되는 나이에 저녁놀처럼 스러져 간다.
부산 집으로 전화했더니 그의 부인이 받는다. 부인마저 이제는 방관자인 양 담담하기만 하다. 세 부자가 어깨동무를 하고 해변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말이 좋아 어깨동무지, 실은 아들 형제가 아버지를 부축하고 나간 것이다.
그의 병세가 판명되자, 맏아들은 서울의 직장을 휴직하고 물리치료사의 자격을 획득해서 내려왔다. 병원이 포기한 아버지의 고통과 외로움을 제 손으로 구완하면서 끝까지 동무하여 드릴 각오라 한다. 수련의(修鍊醫)의 과정을 밟고 있던 동생까지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달려와서 모처럼 만의 전 가족이란다. 그러면서 삼년이 되어 간다. 그만한 버팀이 기적이라 한다. 어차피 못 돌이킬 엇갈림의 행로에 그와 같은 기적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랴.
나는 그의 아들 형제를 알고 있다. 부산 영도의 남단 절영도(絶影島). 바닷가 유치원 고갯길을 한 쌍의 노랑나비처럼 나풀거리던 형 홍 한바다, 동생 홍 한돌. 그리고 그가 교환교수로 올라와 있던 관악 캠퍼스로 찾아간 내게 은근히 자랑하던 이야기 한 토막.
그 얼마 전 주말에 부산의 집을 다녀왔다고 했다. 토요일의 저녁 시간이 그리 늦지 않았건만, 언제나 조르르 달려와서 절을 하던 초등학생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어 있었고 아내 혼자 어둑한 거실에서 그를 맞이하더란다. 조금은 의아스럽기도 했지만 아내의 권유도 있고 해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눈을 떴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떴기에 아내를 나무랐더니 아내는 웃기만 했다. 알고 보니 고향의 부모님들이 다니러 와 계셨는데 그의 아들 형제가 두 분을 모시고 집을 나간 것이었다. 제 어미가 주는 용돈도 거절한 채, 제 놈들의 저금통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구경시켜 드린다면서 아침 일찍 나셨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그의 아들놈들이 꾸민 연극이었다.
오랜만에 내려가는 그를 푹 쉬게 하려는 놈들의 제안에 그의 부모님들이 찬동한 각본이었다. 아내의 배역은 김밥을 준비하는 것과 그를 눈치 못 채게 잠자리로 밀어 넣는 것이었고 그의 역할은 미련스레 잠만 자는 것이었다. 오후 늦게 귀가하신 부모님들 앞에 무릎을 꿇었더니 녀석들은 그에게 용서를 빌더란다. 제 놈들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셔보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그를 쉬게 하려 했던 당초의 배려는 끝까지 발설하지 않더라고 했다.
이제는 장성한 그들이 마지막 부자유친의 도리를 행하고 있다. 형은 혼처가 정해져 있지만 동생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문병 차 내려갔던 동기생이 중매를 자처했더니 의사인 둘째는 소록도에서 일생을 보낼 것이니 그에 맞는 짝이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했다.
그와 나의 만남은 사십 년 전이었다. 그 해 2월초하루, 한국해양대학의 가 입교식에서였다. 갯바람만 매섭게 부는 바닷가 교정의 구내식당에서 생소한 점심을 마친 동기생 백 명이 불안한 기대와 서먹한 안면들로 모여앉아 있었다. 그때 서울 출신으로 보이는 두어 명이 우울한 침묵을 깨뜨리고 나섰다. 식사가 너무나 부실하니 개선책을 건의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저쪽 구석에서 장승처럼 키가 큰 그가 벌떡 일어섰다. 물들인 군복 상의차림의 구부정한 모습이었다. 자기는 제주도 출신인데 이곳의 식사가 고향집의 그것보다 낫다면서. 우리들이 밥투정이나 하려고 이곳에 모였느냐고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러자, 저런 사이비 애국자들 때문에 전도가 험하겠다는 푸념이 뒤따르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간의 특별 훈련을 거치면서 그는 사이비 애국자가 아닌 ‘홍 원칙’의 별명을 착실히 굳혀 갔다. 그의 모든 행동은 원칙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기합을 받으면서도 원칙대로였고, 힘들거나 부담스러운 일에는 늘 선두를 자임하고 나섰다. 그의 그런 모습에는 조금도 흐트러짐도 없었다.
어느 현충일 휴무 때였다. 모처럼 만의 외출에 들떠 있는 나를 그가 막고 나섰다. 유엔묘지를 참배하러 가자는 것이었다. 내가 응낙도 거절도 못하면서 난감해하자, 그는 이곳에 묻혀 있는 젊음들과, 지구 저 편에서 그들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더는 조르지 않았고 자신의 하루만을 묘지의 참배와 묘역의 보수 노역에 고스란히 바치는 것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모교의 교직을 택한 것도 그의 헌신이었다. 후배들을 위하여 한 사람이라도 남아 달라는 학장님의 간청을 그만이 뿌리칠 수 없었다. 그야말로 한시 바삐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였다. 고향집의 누이동생들이 물질을 하는 틈틈이 이웃집 송아지를 얻어다 길러서 오빠의 용돈을 마련하는 가세였다. 그가 내게 자랑스레 보여 주던 누이들의 편지 내용이 그러했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대학의 교수직이 그리 대단하지 않았고, 해외취업의 길이 열려 있던 항해사의 급료는 놀랍도록 높았다.
그가 서울의 내 사무실에 들른 것은 졸업 후 십여 년이 되는 어느 날이었다. 일본의 동경공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면서였다. 서울의 명문대학들이 그를 탐내고 있었다. 나는 그가 서울에 남기를 권했다. 당시로서는 그의 광통신 관련 학위가 최첨단의 것이었고, 모교에는 그의 학적(學績)을 받쳐 줄 만한 공과대학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언제나처럼 단순하고 명백했다. 모든 것은 모교에서 비롯되었으므로 거기에 견줄 비교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세 부자가 날마다 찾아가는 바닷가에서 그는 어떤 모습일까? 헤밍웨이의 늙은 어부가 소시 적에 봤던 아프리카의 남쪽 해안. 해풍이 육풍으로 돌아서는 해으름의 모래펄에 누운 채 새끼들의 재롱에 몸을 맡기고 있는 어미 사자의 그것 같은 모습일까? 아니면 밀레의 만종(晩鐘). 이제는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 시각에 노을 배는 물이랑마다 경건의 기도를 담아내고 있을까? 섬에서 섬으로, 물 위에 뜬 듯 건너다보이는 모교의 정경 앞에서 그는 어떤 마음일까?
먹고 자고 입는 것 외에 수업료까지 국비여서 가난했던 그에게 유학의 꿈을 열어주었던 보금자리. 대학마다 탐내는 첨단의 학위를 받고도 주저 없이 회귀했던 원산지. 그러고는 자신의 전부를 쏟아 부어 가다듬고 지켜 온 보람. 천년도 더 견딜 것 같은 캠퍼스의 위용 앞에서 그 또한 산란을 마친 한 마리의 연어인 양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원초적 고독으로 일렁이고 있을까?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바다는 어떤 바다일까? 생존이 가팔랐던 고향 제주의 애월(崖月) 바당. 할머니와 어머니, 누이들, 여인 삼 대의 두렁박 숨비소리가 하늘에 해가 박힌 날이면 끊임없이 울려 퍼지던 고향집 마당 앞의 그 쪽빛 바다일까? 아니면 수평선과 하늘뿐인 태평양. 여체(女體)의 굴곡을 닮은 물너울 너울 사이로 한 쌍의 말향 고래가 등줄기를 빛내던 바로 그 자유와 평온의 바다일까?
그의 죽음 앞에서 담담하기만 한 내가 의아스러웠다. 각박한 세상을 타성만으로 살면서 측은의 천성마저 증발당한 내 모습이 오히려 서러웠다. 그러나 나중에야 알았다. 완벽하게 승화하는 그의 삶에는 눈물로 적실만한 찌꺼기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그에게는 마스코트처럼 간직해 온 꿈이 하나 있었다. 소년들의 고래잡이 꿈처럼 동화적이었던 그의 소망. 그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정확한 자이로 컴퍼스를 만들어 내리라고 자랑하곤 했다.
자이로 컴퍼스(GYRO-COMPASS). 지구의 자전과 공전, 지구자기(地球磁氣)의 간섭을 극복하고 진방위(眞方位)를 찾아내는 전자 나침반. 작동 초기에는 어쩔 수 없는 동요(Oscillation)로 비틀거리지만 마침내 진북(眞北)으로 정침(定針)하는 지향.
내 친구 홍 원칙. 가난의 부끄러움도 불편조차 모른 채, 순수에의 지향만으로 살아 온 영혼. 이제는 모든 것을 마감하는 시간에 그는 이미 자신의 자이로 컴퍼스를 완성한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