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고속도로. 그것은 인공위성으로 기상을 관측하는 전문 기관이 수시로 안내하는 추천항로다. 선장은 추천항로를 준수해야 한다. 그것을 벗어나면 견책 사유가 된다. 항해와 여행은 사라지고 물류의 달음질만 남았다. 불과 30여 년의 격변이다.
내가 그를 제지한 것은 그가 이런 치부만은 모르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었다.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에게 발가벗겨지기는 죽어도 싫어서였다.
내가 이미 퇴색해 버린 내 선장 면허에의 비애와, 북태평양 한낮을 유유히 유영하던 한 쌍의 고래 등줄기처럼 빛나던 지난 시간에의 회억에 잠겨 있을 때, 그가 다시 정적을 휘저었다.
“내가 강의하는 미술사(美術史)에는 ‘항해와 모험의 시대’라는 것이 있어. 내비게이션 앤 벤처이지. 당시의 뱃놈들이 대단했단 말이야. 그들 중에서도 콜럼버스가 단연 빛났어. 물론 그에 앞서 희망봉을 발견한 디아스, 인도항로를 찾아낸 다가마도 대단하긴 했지. 그들은 모든 생명을 끓이고 태워 죽인다는 적도 해역을 처음으로 통과한 간 큰 사내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땅 그림자를 의지한 항해에 지나지 않았어. 가도 가도 수평선뿐인 망망대해에서 천체만을 지표로 한 항해는 콜럼버스가 그 시조였어. 그것도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나침반과 고도 측정기, 약 30분마다 뒤집는 모래시계만으로 말이야.”
또 한 번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내 전공인 항해학의 지문항해(地文航海)와 천문항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진북(眞北)을 제시하는 자이로 컴퍼스, 천체의 고도를 분단위로 잴 수 있는 식스턴트(육분의:六分儀), 그리니치 표준시를 1초 미만의 오차로 체크해내는 크로노메타(Chronometer)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설사 그렇다고 치더라도 쉰일곱 개의 붙박이별(항성:恒星)과 그들의 별자리만은 모르겠지…….
그와 내가 제법 취해 있었다. 이제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술을 마시는 것도 모두가 걷잡을 수 없는 제 장단이었다. 발동이 걸려도 확실하게 걸린 셈이다.
“동년배인 이사벨라 왕녀의 연정에 가까운 환송을 받으면서 미지의 세계로 돛을 펼친 사나이의 기상이 멋지고 빛났거든. 그에 못지않은, 어쩌면 그보다 더 위대한 뱃놈은 포르투갈의 마갈량이스, 에스파냐의 마가야네스, 즉 마젤란이었어. 신대륙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절대 장벽이라고 우기던, 실없이 부지런한 인간들의 주장을 불과 35미터의 범선으로 뚫어버렸거든.
영하 40도의 혹한과 사멸의 폭풍뿐인 얼음해안을 일 년이 넘게 뒤진 끝에 인도양에서 태평양으로 나서면서, 지구가 둥글다는 신념과 일부변경선의 이치를 증명한 그는 불사신이었지.
르네상스를 꽃피운 것도, 산업혁명의 바탕을 마련한 것도 다 그들 빛나는 뱃놈들의 위업이었어. 그런데도 지구의 인문역사는 그들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어. 그들이 명예나 부, 권력 같은 것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런 것들은 언제나 나약한 인간들의 전유물이었고, 대부분의 역사는 그런 인간들의 손으로 써졌으니깐.
뱃놈들이 추구한 것은 인간 정신의 위대한 가능성과 지식에의 탐구였어. 그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기에 그들은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어 갔어. 배와 뱃놈은 풍랑에 으깨어질망정 땅에서 구차하게 폐기되지는 않는다는 기백으로 말이야.
대서양을 여덟 번이나 횡단했던 대양의 제독, 신대륙의 총독 콜럼버스는 시기꾼들의 음모에 빠진 나머지 분노와 비탄 속에 죽어 갔고, 마젤란은 필리핀의 맥탄 섬 원주민들의 돌팔매로 짓이겨졌어. 그들의 후예인 쿠크 선장은 하와이 폴리네시안들의 곰탕 재료로, 남극점을 정복한 아문센은 피어리에게 선점 당했던 북극에서 추락사로, 스코트는 남극의 얼음 눈밭에서 동상으로 쓰러져 갔어. 그리고 그들 빛나는 전통의 마지막 후예는 섀클턴이었지.
두 번째의 남극 탐험으로 영웅의 명예와 작위, 넘치는 부까지 얻은 그는 세 번째 탐험에서, 2년에 걸친 웨들해의 부빙(浮氷)생활, 맨몸으로 사우스 조지아 섬 횡단 등 인간 능력의 한계를 넘는 사투로 세상을 설레게 했어. 그리고는 다음 탐험에서의 비참한 최후였지. 그와 동시에 인류 정신의 진정한 벤처는 끝나버렸거든.
지구가 둥글다는 가설은 그리스 시대부터 있어 왔어. 그러나 그것은 ‘만약에’와 ‘그러나’밖에 모르는 인간들의 말놀이에 지나지 않았지. 그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것은 바로 그들 빛나는 뱃놈들이었어. 그러나 지금은 그런 뱃놈들도 없거니와 그때의 그들을 닮은 환쟁이들의 모습도 이제는 보이지 않아. 다만 생산원가에서 판로까지 빤한 기업을 도모하면서 벤처라는 이름만으로 그들을 흉내 내려는 조무래기들만 넘칠 뿐이야.”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제는 이마와 콧등에서 번져 내린 홍조가 그의 얼굴 전부를 덮고 있었다. 그는 다시 이전처럼 웃고 있었다. 눈가에 번져 있는 물기가 땀이라면 그는 분명 웃고 있었다.
그런 그의 등 뒤로, 그의 얼굴빛을 닮은 단풍잎들이 후드득 후드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석양을 받아 번쩍이는 그의 넓은 이마와 펑퍼짐한 콧등이 흡사 큰 바위에 새겨진 얼굴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도 어지간히는 취한 모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