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고향집으로 내려갔더니 동생이 누런 서류용 대형 봉투 하나를 말없이 밀어주었다. 겉봉에 ‘위급할 때는 이것을 열어 봐야지’라고 붓글씨로 적혀있었다.
성복(成服)을 마치고 나서 뜯어 봤더니, 같은 지질의 중형 봉투 하나와 규격 편지봉투 한 장이 들어있었다. 제법 불룩한 중형 봉투에는 ‘의산입록(依山入錄)’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버지 당신과 어머니의 유택(幽宅) 터를 잡으시고 좌향(坐向)을 설정하신 내용이었다.
규격 편지봉투의 겉봉에는 ‘배필전(配匹前)’이라고 쓰여 있었다. 의당 어머니에게 넘겨드려야 할 일이었지만, 어머니가 안채에서 경황이 없는데다 혹여 상례에 관한 말씀이라도 계셨을까 하면서 열어 봤다. 봉투가 봉해져있지 않은 것으로 봐서 장남인 내가 먼저 봐도 무방하리라는 판단이기도 했다.
배필에게’로 시작하는 한글 편지였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층층시하의 종부로 들어온 이래 지금껏 고생만 시켰으니 미안한 마음이 그지없다고 쓰셨다. 그러고도 위로의 말 한 마디 없이 떠나는 무례를 용서하여 달라는 사과문이었다. 슬하의 자식들을 성가시켜 내보내고 나면 그때는 남들만큼 정다운 시간이 있으리라 믿었건만, 때는 되었으나 졸지의 신병으로 이른 눈을 감게 되니 타고난 박복의 운명이 한스러울 뿐이라는 탄식이었다.
정녕 저승이 있다면 그곳에서는 만단을 제쳐두고 기다릴 것이니 그때를 기약하자고 하셨다. 그러나 서두르지는 말고, 자식들의 효도로 건강을 도모하면서 이승의 갖은 영화를 골고루 누린 다음에 천천히 오라고 당부하셨다. 또다시 허망한 언약이나 앞세우는 지아비의 자괴(自愧)가 크고도 많다면서 맺으셨다.
5일장(葬)의 상례를 마치고 어머니께 전해드렸더니 어머니는 소리 없이 우셨다. 다 읽은 편지를 내려놓고도 연방 돋보기를 들추면서 눈자위를 찍어내셨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그만큼 생각하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더니 어머니도 그렇다면서 계면쩍어 하셨다.
깨알 같은 글씨로 편지지 두 장을 꽉 채운 아버지의 사부곡(思婦曲)은 뜻밖이었다. 평소의 아버지는 자상하거나 다감하지는 않으셨다. 자식들에게는 잔정 없이 엄하셨고 어머니에게는 사뭇 무정하셨다. 우리들 다섯 남매 중 누군가가 사소한 잘못이라도 저지르거나, 작은집들과의 사이에 조그만 불화의 낌새라도 보이면 불호령은 반드시 어머니 몫이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그럴 만한 이유도 없이 고양이 앞의 쥐처럼 움츠리셨다.
사실 그때 우리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성정은 어느 정도 억지스럽고 위압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밖에서의 아버지의 평판은 사뭇 달랐다. 깊은 한학에 너그럽고 인자하신 인품으로 인근에 소문나 있었다. 네 형제분이 길 아래 위에서 담장을 트고 잡음 없이 지내는 것도 다 그런 아버지의 재가(齋家) 덕으로 칭송되곤 했다.
아버지는 내 사촌들에게도 우리 친남매들과는 달리 각별하셨다. 그들 중 어느 하나가 간혹 우등상장이라도 받아오는 날이면 그를 사랑방으로 불러들여 칭찬하면서 용돈까지 쥐어주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마다 상장을 빠뜨리지 않는 내겐 일언반구의 표시조차 없으셨다. 내가 도청소재지의 고등학교로 진학하겠다면서 이틀 밤을 읍소했을 때도 아버지는 동네 앞산의 수직암벽처럼 냉담하셨다.
그러다가 입학식도 끝난 어느 날에는 문득, 그 학교로의 전학을 알아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이렇듯 억지스러운 아버지의 독단이 싫었다. 아버지의 그런 처사를 빠짐없이 지켜보면서도 벙어리 냉가슴만 앓아야 하는 어머니가 가여웠다. 그랬던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절절(折節)의 참회록이 당시 서른 세 살의 내겐 낯설었다.
그로부터 열두 해 후, 이번에는 어머니의 부음을 접하고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억울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비명(非命)이 그랬고, 그런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내 처지가 그러했다.
무의식 상태로 입원해 계시는 어머니의 예정된 임종만은 반드시 내가 모시리라 했다. 그래서 매주 후반의 사흘 밤은 내가 병실을 지키기로 했다.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가 간단하지 않았고, 간이침대조차 허용되지 않는 중환자실의 철야간병이 수월하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뿐임에야.
그런데도 어머니는 하필 내가 비운 시간에 마지막 눈을 감으셨다. 일요일 오후 내가 서울로 돌아올 때, 어머니의 병상 앞에 모인 다섯 남매 중 어느 누구도 최소 한 주일 이내의 참변은 예측하지 않았다. 그랬던 어머니가 그 이튿날인 월요일 저녁에 돌아가셨다. 허탈하고 억울했다.
아버지의 임종도 다르지 않았다. 그 해 팔월, 본사 근무의 발령을 받고 부임하는 길에 고향집을 다녀온 닷새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노환이 있긴 했지만 골목까지 걸어 나오셔서 배웅하시던 아버지의 그토록 빠른 재촉은 생각조차 못한 일이었다. 다만 그때 “하늘에 구름이 모이는 것은 비가 내릴 징조이며 해상근무를 하던 내가 땅으로 올라오는 것은 집안에 일이 있을 조짐이니 연락망을 잘 유지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있었지만, 그것을 큰일과 연관시키기에는 나와 아내가 턱없이 아둔했던 것인가.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종신하지 못한 것이 다 운명인가 싶었다. 확실히 그런 것 같았다. 내가 초등학교 사, 오학년 때였다. 고깔모자를 쓴 여자스님 한 분이 우리 집으로 탁발을 오셨다. 어머니가 알곡을 조금 시주하자 스님은 내 손금과 관상을 봐 주셨다. 맏아들인 내가 부모종신은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웃어 들었지만 어머니는 굳게 믿으시는 눈치였다. 그래서 훗날 내가 객지생활을 시작할 때나 항해에 나섰을 때도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부모종신 같은 것은 생각지도 말라고……. 마치 두 분의 일은 당신들이 알아서 할 테니 간여하려들지 말라는 듯 서운하게 들리는 말씀이었다.
내게 전달된 어머니의 유품은 빨간색 비단 주머니 하나였다. 그 속의 크지 않은 봉투였다. 겉봉에 ‘이것만은 하관시에 같이 넣어다오’라고 적혀 있었다. 열어봤더니 작은 봉투 세 개가 들어있었다. 첫째 봉투는 붉은색과 남색의 실타래였다. 아버지가 장가드실 때, 우리 집에서 외가로 납채(納采)를 하면서 얹어 보냈던 청실홍실이었다. 둘째 것은 역시 그때 동봉됐던 아버지의 사주단자였다. 증조부께서 한지에 붓으로 쓰신, 아버지의 성명과 생년월일이었다.
정확하게 육십오 년을 지낸 그것의 지질이나 자획에 눈곱만한 탈색이나 변형도 없었다. 그리고는 내가 십이 년 전에 전해드렸던 아버지의 편지였다. 여전히 봉해지지 않은 채였다.
삼우제를 지낸 뒤, 어머니의 산소에 남아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생각했다. 지금쯤 어머니는 세 가지의 증표가 들어있는 비단 주머니를 들고서 아버지가 계시는 곳으로 달려가시고 있을 거라고. 어쩌면 이미 수많은 관문을 통과해서 도착하셨을 거라고. 갖고 계신 증표들이 완벽하니까. 그러나 이곳에서 부산을 떨고 있는 자식들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으실 거라고. 첫 기제(忌祭) 때에는 아버지의 팔을 끌며 오실까 몰라도 당분간은 정말 그러실 거라고. 제발 그러시라고.
그런데 그때 아버지는 왜, 어머니에게 전하는 편지를 봉하지 않으셨을까. 자식 놈들 몰래 전할 사연은 없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맏아들인 나라도 읽어보라는 암시였을까. 그리하여 당신이 못해 주신 어머니의 영화를 다섯 남매가 효성으로 책임지라는 전언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내게 그런 말씀이라도 한 마디 남기지 않으셨을까. 그 또한 허망한 노릇이라 생각하신 것일까.
그때 아버지는 어머니의 편지에서 ‘모든 것이 허망하다. 허망하고 또 허망하다.’라고 쓰셨으니깐. 그래서 어머니마저 아버지만을 향한 채, 내겐 한 마디의 유언도 없으셨던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