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음력 팔월 들어 첫 토요일은 고향으로 가는 날이다. 매년 팔월의 첫째 일요일로 정해져 있는 문중벌초(門中伐草)에는 그곳 출신 성인 남자 모두가 빠짐없이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곳 마을의 역사만큼 오래된 불문율이어서 웬만한 이유로는 결석이 용인되지 않는다. 그래서 토요일 해질녘이면 전국 각지의 일가(一家)들이 선산(先山)밑 집성촌(集姓村)인 고향마을로 모여들어 문중회의에 얼굴을 내밀고 오랜만에 만나는 핏줄들의 안부를 확인한다.
젊은 시절의 그것은 적잖은 부담이었다. 천릿길에 소요되는 경비도 간단하지 않았지만 시간을 내기는 더욱 수월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시간만은 풍부해진 요즈음에 와서는, 어리던 때의 명절날처럼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우선은 편한 차림으로 일상사를 훌쩍 벗어나는 기분이 경쾌하다. 3번 국도를 따라 가없이 출렁이는 중원평야의 금빛 물결이 흐뭇하고 이화령 굽이굽이를 적셔드는 초가을의 정취도 다감스럽다. 거기에 고향마을 별빛 아래서 애동 호박 씨암탉 볶음에 후룩후룩 마시는 막걸 리가 나이 들면서 더욱 당긴다.
간혹은 혼자서 내려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친구와 함께 떠난다. 고등학교 동기인 그의 선산이 내 고향마을에서 멀지 않은데다 서로 자동차를 편승하는 편리도 있어서, 바쁠 것 없는 초가을 귀향길을 말동무하면서 쉬엄쉬엄 내려간다.
아침 늦으막에 서울을 떠나 정오 무렵이면 예천군 용궁에 이르고, 그곳 장터 뒷 켠의 허름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우리들이 들어설 때마다 “하마(벌써) 벌초날이껴?” 하면서 반기는, 말투처럼 수더분한 안주인의 음식 솜씨가 별다르지 않지만, 갓 뽑아다 씻어내는 의성종 조선배추의 된장쌈이 풋풋하고 푸짐하다.
그것은 우리들의 요청으로 마련된, 일 년 중 단 한 끼만의 특별 메뉴이다. 거기에 투망질 명수인 주인아저씨가 강에서 건져 오는 민물고기 튀김이 점심 반주(飯酒)에는 더없는 맞춤이어서, 우리들은 조금 이르거나 늦더라도 어김없이 용궁 장터를 들르고, 그곳 식당에서 고향집의 그것처럼 푸짐한 점심을 가을소풍같이 느긋하게 즐기곤 한다.
그날도 친구와 동행이었다. 안주인의 언제나 똑같은 인사를 받으면서 식당을 들어서는데 주인 아저씨가 바로 뒤따라 들어왔다. 젖은 바짓가랑이를 허벅지까지 말아 올리고 물방울이 뚝뚝 듣는 투망을 어깨에 멘 차림이었다. 그는 인사도 거른 채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소주부터 시키라고 우리들을 닦달했다. 그러면서 사납게 퍼덕거리는 은어 한 마리를 투망 속에서 꺼내어 놓았다.
황록색 등줄기와 은백색 복부 사이로 아가미에서 꼬리까지 옆줄이 선명하게 나 있는 은어가 큰 꽁치만 했다. 친구와 나의 탄성에 아저씨는, 공군 장교들이 달라는 것을 간신히 뿌리치고 가져 왔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안주인이 “그리도 술이 먹고 접어서(싶어서) 자식 놈 상관이카는 것도 안 주고 왔능교?”라고 핀잔하면서도 원망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우리 세 사람의 술자리는 어차피 예정되어 있는 것이었으므로……
우리들은 오랜만에 맛보는 은어회를 예찬하면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마침 서울에는 비브리오균 파동으로 횟집들이 문을 닫고 있는 때여서, 우리들은 서로에게 조심하라고 농담하면서 ‘참깨가 서 말’이라는 초가을 은어의 토실토실한 살점의 향기를 연거푸 들이켰다.
적지 않던 은어회가 게 눈 감추든 사라지고 댕그라니 남아있는 두어 점을 아쉽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아저씨가 아주머니 몰래 귀띔해 왔다. 한 마리만 더 구해 오라고 자기한테 떼를 쓰라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놓칠세라 성화를 부렸고 아저씨는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아주머니의 눈치를 살피면서 내키지 않는 듯 굼뜬 동작으로, 투망 속에 남겨 뒀던 한 마리를 마저 내어 놓았다.
그러자 사태를 눈치 챈 아주머니가 정색하는 눈길로 남편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이미 얼근해진 세 사람의 대세를 의식한 듯 “하루라도 좀 덜 마시면 죽는다 카등교?”라고 쏘아붙이면서도 회를 장만해 주었다. 그러고는 배추나 뽑아 온다면서 식당을 나섰으므로, 우리 셋은 초가을 오후가 중참(中站) 때를 지나는 것도 잊은 채, 소주를 안주삼아 은어 회의 제호미(醍醐味)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의 안동에는 낙동강에 은어가 많았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초가을로 접어들면 산란 장소를 찾아 상류로 내달리는 은어 떼들이 꼬리를 물고 몰려들었다. 해맑은 초가을의 마알간 강물 속에서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은어 떼의 유영이 경쾌하고 날렵했다.
이때쯤이면 강심에는 투망꾼들이 늘어서고 강기슭 풀밭 여기저기에는 즉석 은어 회에 40도짜리 안동소주를 즐기는 어른들이 둘러앉곤 했다. 가을이 짙어가면서 은어는 더욱 흔해져서 늦가을이면 저잣거리의 반찬가게마다 은어를 수북이 쌓아두고 팔았다.
어린 우리들도 가끔 투망질에 나셨다. 친구들 중 한 명이 어른들 몰래 투망을 들고 나오면, 그를 장군처럼 앞세워 강으로 향했다. 찬칼 한 자루와 고추장 한 정지만 준비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은어 잡이가 쉽지는 않았다. 초가을 은어는 너무나 날렵해서 투망 속에 가두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어쩌다가 한두 마리가 들었다 해도 투망을 걷어 올리고 보면 허탕이기 일쑤였다.
은어란 놈이 워낙 영리해서, 강바닥의 돌멩이 옆구리에 머리를 붙이고 기다리다가 투망의 납추가 지나가면서 살짝 들리는 순간에 잽싸게 빠져나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은어가 들었다 싶으면 우리들 전원이 투망을 밟고 분탕질을 쳤다. 그런 다음에야 초주검이 된 놈들을 실수 없이 건져 올릴 수 있었다.
무딘 찬칼로 머리와 꼬리만 잘라내고 듬성듬성 토막 낸 은어 회를 생고추장에 찍어서 먹었다. 탱탱한 감촉에 비린내 없이 고소한 맛과, 오이 냄새 같기도 하고 솔잎 내음 같기도 한 향기가 짙었다.
수정란에서 갓 부화한 치어들은 몸길이가 5~6밀리미터 정도 되는데, 이들은 점점 차가워지는 수온을 피해 강 하류로 내려가서 하구 인근의 바다에서 겨울을 난다. 이듬해 봄이면 5~6센티미터로 자란 새끼들이 다시 상승하는 수온을 따라 강을 거슬러 오른다. 여름이 지나면서 흠씬 자란 성어의 신장은 20~39센티미터에 이른다. 더 큰 것들도 있다고 한다.
곤쟁이, 반짝이, 알롱, 어내, 은과, 치리…… 등 다양한 명칭처럼 전국의 모든 강과 하천에 서식하는 고급 식용어종이다. 특히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에 집중적으로 서식한다고 한다. 계절을 따른 수온 변화에 적응하기 편리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대표적인 남류하천(南流河川)인 안동 지방의 낙동강에는 은어 떼가 사라진 지 오래다. 상류의 양 지류에 댐이 생기면서부터이다. 댐에서 흘러 보내는 물이 워낙 차가운데다 수량(水量)마저 크게 줄어든 탓이라고 애석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은 적당한 수심에 모래와 자갈이 깔려있고 수초가 자라는 등 조건을 구비한 상류의 산란지가 댐으로 차단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섬진강에는 최근까지도 은어가 흔해서 일본인 미식가(?)들이 낚시 관광을 자주 오는 모양이었다. 그곳 출신 시인의 시.
은어 잡이 나온 일본인 관광객들
삼박사일 풀코스에 육만 엔이란다.
초가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아침햇살
신선하게 터지는 박꽃넝쿨 바라보며
리빠나 모노데스네(훌륭한 경치로군요) 리빠나 모노데스네
낚싯대 접고 고무장화 벗고
순천 특급호텔 사우나에서 몸 풀고 나면
긴 밤 내내 미끈한 풋가시내들 서비스 볼 만 한데
나이 예순 일본 관광객들 칙사 대접 받고
아이스박스 가득 등살 푸른 섬진강
맑은 몸값이 육만 엔이란다.
― 곽재구 시인의 ⌜유곡나루⌟발췌
어느 가수 겸 작곡가가 이 시에 곡을 붙여 보고 싶다기에 그러라고 했더니 자신이 작사한 한 구절을 마지막에 덧붙였다고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좆돼 부렀다.’라고……
섬진강 상류에도 요즈음에 댐이 몇 개 생겼다고 한다. 낙동강과 함께 국내의 양대 남류 하천인 섬진강의, 그나마 남아있는 은어의 씨가 말라버린다면, 그 흔하던 은어마저 이제는 전설 속의 어종으로 사라지는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