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상
내 어릴 적 생일은 음력으로 4월 2일이었다. 그래서 그때 사람들이 내게 생일을 물으면 나는 ‘사월초이틀’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면 그들은 어린아이의 대답이 음전하다면서 기특해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신이 나서 온 동네 사람들에게 ‘사월초이틀’을 뇌고 다니는 것이었다. 물론 사월이니 초이틀이 뭔지 모르면서 내가 네 돌을 지냈을까 말까 한 때의 일이었다.
그때 내게 생일을 암기시킨 것은 아마도 할머니 아니면 어머니였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막 말을 익히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을 터였다. 왜냐하면 지금껏 내 기억의 맨 밑바닥은 바로 그 사월초이틀의 회상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음력 4월 2일이면 어머니는 내 생일상을 차려주셨다. 작고 나지막한 개다리소반에 하얀 쌀밥과 산나물무침 두 접시, 그리고 꽁치 아랫도리 한 토막이 생일날의 특별 식단이었다. 별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당시의 여건으로는 대단한 차림이었다.
우선은 쌀밥부터가 귀하던 때였다. 음력 사월이면 앞 ‧ 뒷산의 소쩍새 울음소리와 함께 보릿고개가 시작되면서 무릇, 송기(松肌) 등의 초근목피가 절량농가의 끼니 양식으로 대용되던 시절이었다. 그런 그때의 순쌀밥이란 제삿날을 제외하고는 이웃에 눈치가 보이도록 사치스러운 식단이었다.
산나물은 홑잎, 햇잎, 혹은 나비나물이라고도 부르는 화살나무 잎과 원추리 순이었다. 뒤에 안 일이지만 우리네 산야에서 가장 먼저 돋아나는 두 가지 산채였다. 음력 사월 초라면 양력으로는 오월도 중순쯤은 되겠지만, 지금보다 한 달가량 절후가 늦었던 당시에는 아직 때 이른 야생 봄나물이었다.
더구나 산골마을의 시절은 더욱 늦어서 고향의 산천에는 기껏 진달래나 제철일까 말까한 때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해마다 그맘때면 용케도 그것들을 뜯어오셨다. 아마도 당신만이 아시는 어느 양지받이 자생지가 따로 있는 것만 같았다.
봄 향기가 가득한 산나물 두 가지를 각각 데쳐서 깨소금과 간장으로 버무려 무쳐 주셨다. 연녹색 이파리와 새순 위로 참기름의 윤기와 냄새가 반지르르 흘렀다. 거기에 솔가리 몽근 불로 노릇노릇 구워낸 꽁치까지 보태면, 그때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내 생일상은 세상에 둘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그날 저녁은 반드시 칼국수였다. 수명이 국숫발처럼 길어야 한다는 축수(祝壽)의 의례였다. 대청마루에 정갈한 왕골 돗자리를 펴고는 밀가루반죽에 생콩가루를 뿌리면서 안반과 홍두깨로 국수를 밀던 어머니의 그때 그 모습은 그날 하루 종일 행복했던 내 어릴 적 생일날의 잊을 수 없는 표상이었다.
국수를 썰고 난 꼬랑이는 내 차지였다. 그것을 잿불 위에 얹어서 천천히 구우면 풍선처럼 불룩 일어나는 국수과자였다. 자랑삼아 들고서 사립을 나서면 이웃 어른들은 오늘이 사월초이틀이냐면서 나를 놀릴 겸 축하해 주었다. 그래도 한적한 산촌이 무료해서 들판 길을 내달리면 뼘 자란 보릿대들이 오월의 훈풍에 물결치며 반겨주었고, 저물녘 파란 하늘에서는 종달새가 지리지리 울었다.
보리밭 고랑에 집을 짓고 살면서 구름 속으로 날아다닌다는 종다리는 언제나 소리만 들릴 뿐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애써 우러르면 밝은 하늘빛에 눈만 부셨다.
고향마을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의 일이었다. 대처의 중학교로 나오면서 끝난 추억이었다. 더구나 어른이 되면서 각박한 객지살이에 해마다 헷갈리는 음력이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주민등록의 생 월일을 양력 생일로 바꿔 잡았으니 이제 내 본래의 사월초이틀은 종적조차 없어진 셈이다. 그러나 내 나이가 예순이 넘어 그때의 어머니보다 더 늙어버린 지금도 가끔 불현듯 사무치는 그리움이다.
기왓장 빻은 가루로 닦아서 티 없이 반짝이던 키 낮은 놋주발과 대접, 넓은 자루에 꽃무늬가 곱게 새겨진 내 전용 수저 등의 반상기까지 꿈에 보인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생일상을 다시 한 번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비몽사몽 중에 간절하다.
그러다가 가만히 짚어보면 어머니 가신 지 어언 열여덟 해, 내가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나도 이제 망령이 나는가 하면서, 잠자리에 누운 채 남모르게 서럽다.
그래도 이제 도리는 없다. 빛나는 오월에 세상을 보게 해주신 어머니의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가끔은 못 견디게 그립고 외롭더라도 남은 세월을 일없는 듯 묵묵히 지낼 밖에는.
―체육복
초등학교 시절의 가을 운동회는 지역사회의 축제였다. 대부분의 가정이 적어도 오륙 남매는 두었던 당시에는 초등학생이 없는 집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초등학교 운동회는 학동들의 행사 외에도 줄다리기, 마라톤 등 어른들의 동 대항 시합까지 겸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거기에 추석연휴라도 겹칠 때면 객지로 나가있던 사람들까지 합세한 축제는 장사들의 황소내기 씨름대회로 연결되기도 했다.
헤어졌던 동창이나 친구들이 그날의 운동장에서 반갑고, 뜸했던 사돈들이 그곳 차일 밑에서 다정스럽다. 그래서 그맘때면 집집마다 내 고향 사곡면의 원산인 조생종 감 사곡시(舍谷柿)를 따서 침시(沈柿)를 담그고, 아직은 철이 일러 소출이 떨어지는 고구마 밭이랑을 파헤치면서 축제의 풍요로 치닫는다. 보릿고개, 세 벌 논매기의 아픔이 언제였냐는 듯 이때만은 그냥 있어도 배가 불렀고 하늘과 산야는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초등학생인 우리들에게도 신나는 계절이었다. 학기 초의 무더위가 어느덧 사라지고 서늘한 기후에 오전수업이 좋았다. 도시락을 까먹고 나면 오후는 운동회연습이었다. 하얀 추리닝으로 늘씬하게 갈아입은 여선생님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보리밭 종달새 울음처럼 듣기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횟가루로 줄을 그은 운동장 위로 만국기까지 걸리면 어린 나이에도 가슴 뛰는 흥분이었다. 더욱 신나는 것은 새로 산 체육복을 얻어 입는 일이었다. 양옆으로 흰 줄을 친 검정색 반바지와 백색 메리야스 러닝셔츠였다. 설빔이래야 양말 한 켤레면 감지덕지였던 당시의 기준으로는 대단한 횡재였다.
운동회 연습기간에는 체육복 차림으로 학교를 다녔다. 온 동네 학생들이 똑같은 복장을 한 채 일렬종대로 등교하는 모습은 우리들이 보기에도 멋있었다. 그때 새로 산 체육복에서 풍기던 구제품냄새는 우리들의 가을 풍요의 표상이었다. 우리들은 그것을 신품냄새라면서 좋아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연습 내내 새 체육복을 사주지 않으셨다. 작년에 입던 것을 내어놓으면서 한 해 더 입으라고 하셨다. 물론 체육복으로서의 기능이야 손색이 없었지만 세탁을 하면서 흰줄이 우중충하게 물든 반바지가 보기에도 싫었다. 목 부분이 길게 늘어난 러닝셔츠도 맘에 들지 않았다.
죽어도 입지 않겠다고 울면서 떼를 써 봐도 어머니는 물자를 아껴 써야 한다는 한 마디로 요지부동이었다. 자연 등굣길이 시들해졌다. 몇몇 여학생들을 만나면 초라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무슨 방도는 없었다. 며칠만 지나면 다른 아이들의 체육복도 때가 묻거나 빨아서 나와 같아진다는 어머니의 예언을 애써 긍정하면서 지낼 밖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