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운동회 날이 되면 어머니는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셨다. 장롱에서 새로 사두었던 체육복을 꺼내 주셨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운동장에서 나만의 깨끗한 체육복이 눈에 띄게 하셨다.
어머니의 그런 작전은 해마다 변동이 없었다. 어떤 해는 흉년이 들었다는 이유로, 혹은 아버지가 장날에 깜빡하셨다면서 용케도 나를 속여 넘기셨다. 그러면서 운동회에는 반드시 새 옷 차림으로 내보내셨다.
군내 초등학교 체육대회에 대표선수의 일원으로 출전하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학교에서 지급받은 선수복은 제법 폼이 나는 것이었다. 질긴 고급 천에 허리 벨트가 넓적한 반바지와 모교의 이름이 선명하게 찍힌 붉은색 셔츠였다. 어머니는 그것을 보관하시고는 비슷한 것으로 마련해주시면서 운동에만 전념하라고 하셨다.
전담 선생님의 특별지도로 근 한 달이나 지속되는 제법 강도 높은 훈련이었다. 단봉던지기가 주 종목이면서 사백계주의 후보 선수였던 나는 날마다 던지고 달려야 했다. 그러면서 새까맣게 그을린 채 땀에 젖은 몰골로 귀가하는 시간은 언제나 해가 기운 저녁나절이었다.
내가 대문을 들어설 때면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부엌으로 끌어들이시고는 누가 볼세라 문을 닫아거셨다. 그러고는 참기름을 바르면서 구워낸 김으로 하얀 쌀밥을 싸주셨다. 가끔씩은 약병아리 백숙도 끓여주셨다. 그러면서 말씀하셨다. 늦더위에 먹는 김과 쌀밥은 보약보다 나은 것이라고…….
그 해 늦가을, 열여덟 읍면의 삼십여 초등학교가 참가한 군 체육대회에서 단봉던지기로 일등을 했던 것은 순전히 어머니의 지극 정성 덕분이었다. 그날 읍내 중부초등학교의 드넓은 운동장에서 가장 빛나는 복장으로 던지고 달리면서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의 아들인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어머니의 염원 덕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가졌을 때에도 남다르셨다고 했다. 남녀의 구별이 심했던 그때는 여자들의 바깥나들이가 조심스러웠다. 남정네들이 길가에 나와 앉아 있으면 여자들은 뒷길로 돌아서 다니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를 가지면서부터 그러지 않으셨다. 만삭인 몸으로도 대로의 한복판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이제 곧 태어날 당신의 아들은 어느 누구의 뒷길로 다녀서도 안 되며 언제 어디서든 당당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태교였다. 근래에 먼 인척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그때까지 내리 딸만 셋을 낳았던 어머니는 뱃속의 내가 아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 당시에 그것을 미리 알 수 있는 방도는 절대로 없었을 터였다. 아마도, 이번에는 기필코 아들이어야 한다는, 가여운 어머니의 혼신의 절규였을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그렇게 낳아 주셨건만, 나는 어머니의 먼 길 하직을 당연지사인 양 받아들였다. 이제야 생각해 보면 불효를 지나 배신이 극에 닿는다. 그러나 이제 나 또한 속절없는 시간에 성인(聖人)의 수풍지탄(樹風之嘆)만 절실할 따름이다.
―명주이불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객지살이로 나설 때, 어머니는 새 이불 한 채를 싸 주셨다. 붉은색 상단과 남색 하단의 거죽에 하얀 잇을 댄 명주이불이었다. 그때껏 식구들과 함께 덮던, 자주색과 검정색 거죽의 무명이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부드러우면서 가벼운 고급품이었다. 그러나 여럿이 함께 기거하는 하숙이나 자취방에서 혼자 덮기에는 너무나 커서 거추장스러운 이불이었다.
몇 년 뒤, 내가 고등학생일 때였다. 나보다 열두 살 위인 큰누나가 내게 그 이불의 유래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어리둥절해하는 내가 지극히 못마땅하다는 듯 정색하며 훈계조로 말했다. 맏아들인 나로서는 그것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어머니가 딸만 셋을 낳자 집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고모들은 장손이 없는 친정에는 발길 할 일도 없다면서 할아버지를 몰아세웠다. 그러자 고모들이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아버지의 새 장가를 종용하고 나섰다. 급기야는 혼처가 정해지고 혼례의 날짜를 잡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뱃속에 든 것만이라도 낳고 보자는 할머니의 제안으로 보류되었다가 내가 태어나면서 무산된 혼담이었다.
나를 업어 키우다시피 한 큰누나의 간곡한 얘기였지만, 아직 철부지의 혈기였던 당시의 내겐 그다지 절실하게 와 닿지 않았다. 다만, 그 무렵 무전여행에서 만난 어느 스님이 내 관상을 봐 준다면서, 어머니가 두 분이 될 뻔했다던 이야기와 겹치면서 내 어릴 적의 운명이 그렇게 돼 있었나보다 하고 생각될 따름이었다. 더구나 아버지가 새 장가를 들지도 않고 해피엔딩으로 끝난 그 이야기를 내가 꼭 명심해야 할 이치도 뚜렷하지 않았다.
그랬던 것이 내가 손자까지 둔 요즘에야 자꾸 맘에 밟힌다.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시앗에게 천생의 연분마저 넘기려했던 그때 어머니의 심회가 어떠했을까. 두 사람의 보금자리를 위해 명주이불을 시치고 호던 땀땀이 어머니의 눈물과 한숨이었을까. 너무나도 힘겨운 운명의 고독을 밤 새워 다독이면서 그 작은 체구로 어떻게 견디셨을까?
이 또한 나로 인한, 최소한 나와 연관된 어머니의 아픔이었건만, 전해 듣고도 나는 몰라라 살아온 삶이 지금에야 한스럽다. 어머니 한생의 영원한 피멍을 살아계신 생전에 한 번이라도 쓰다듬어 드리지 못한 회한을 이제 와서 어찌할거나.
왜, 도대체 무슨 연유로, 무량의 은혜에는 하나같이 만시지탄(晩時之歎)만 남는 것인가?
―어머니의 잠
나는 지금껏 어머니의 주무시는 모습을 본 일이 없다. 식구가 십여 명이나 되던 농가의 저녁을 설거지하고 나면 산촌의 하루는 언제나 밤중이었다. 빨래하고 수선하기, 내일을 위한 땟거리 준비는 그 다음의 작업이었다. 그 중에서도 최소 세 사람은 달라붙어야 하는 방아가 큰일이어서, 어머니는 거의 날마다 고모, 숙모, 혹은 누나들과 함께 작은집 디딜방앗간에서 쿵덕쿵덕 찧고 빻으면서 저녁을 지내셨다.
집으로 돌아오시면 바로 길쌈이었다. 안방 윗목에 장치된 물레를 오른손으로 돌리면서 왼손으로는 솜고치의 실을 자으셨다. 그때 부르릉부르릉 돌아가던 물레 가락 소리는 밤마다 옆방에서 잠을 자던 내게 한결같은 자장가였다. 그렇게 저녁마다 쌓이는 실꾸리들은 농한기에 어머니의 베틀로 꾸려지는 것이었다.
만뢰가 잠든 밤이면 어머니는 편지를 쓰셨다. 부러진 다리를 명주실로 감아 묶은 돋보기를 콧등에 걸친 채 까만 호롱불 아래 엎드려서 흥얼흥얼 읊으면서 쓰셨다. 내 필통보다 작은 돌벼루에 몽당 먹을 갈아서 가는 붓대로 써 내리시던 그 편지는 동네 부인들의 사연이었다. 우리 동네로 시집온 부인네들이 친정이나 동기간에 길흉사에 예물을 보내면서 동봉하는, 소위의 언문 내간(內簡)이었다.
어머니는 인근마을 부인들의 그것까지 거절하지 못하고 대필하셨다. 그러나 대필 요금은 받지 않으셨다. 단지 그들이 가져오는 한지 한 권 중에서 편지를 완성하고 남는 것이 어머니의 밤샘 수고비가 되는 셈이었다. 대개는 반 장으로 편지를 쓰고 나머지 반 장으로 봉투와 묶음 띠를 접으셨다.
가끔은 몇 장이나 버리고 다시 쓰면서 어머니의 편지쓰기는 내가 한 잠을 자고난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어머니는 언제나 부엌으로 나가 계셨고 안방 어머니의 반지고리에는 반듯하게 접혀서 댕기로 곱게 묶인 편지봉투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편지가 없는 밤에는 책을 읽으셨다. 예의 돋보기를 느슨하게 걸친 채 등잔불 높이에 눈을 맞추고 바짝 다가앉아서 조용조용 읽으셨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장화홍련전, 류 충렬전, 혹은 조 웅전 등의 고담(古談)소설이었다. 그때 나긋나긋 읽으시던 어머니의 음성은 내 잠결 속에서 마치 긴긴 겨울밤의 싸락눈 소리처럼 정겨웠다.
잘 키운 자식들을 따라 도시로 나왔던 어머니는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새벽 산책길에 나섰다가 무법 오토바이에 당하신 변이었다. 평생에 못 다하신 잠이라도 원 없이 주무시려는 듯, 한 달이 넘게 눈만 감고 계시다가 가셨다. 제 잘난 다섯 남매가 무심한 듯 둘러선 병상에서 눈길 한 번 주시지 않고 그냥 그대로 떠나가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