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프롤로그]

머리말 

“모든 사람에게 건강(健康)을”이라는 표어는 인류가 바라는 가장 소중한 소망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또 이 표어는 1978년 구 소련의 알마아타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의 결의사항이기도 하다. 이 선언에는 서기 2000년까지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의료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나는 일제 말기에 뜻하지 않게 의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한국동란 직전에 의사가 되었다. 사람의 운명은 시국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아 자기 자신조차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된다고 생각된다. 

나는 약 10년간을 의학공부와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으로 보냈으며, 그 후 대학교수로서 약 10년간, 그 다음에는 정치인으로서 10여년 간, 그리고 의학협회장으로 9년간을 보냈다. 보사부장관으로 일한 것은 이순(耳順)을 넘어서였다. 

그 후로도 연구실과 강단에서 비교적 조용하게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 인생을 정리하면서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자연스럽게 과거를 정리해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비교적 다양한 경험을 회고하면서 글을 쓰다 보니 하나의 책이 되었다.  

나는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지난날의 경험이 후진들에게 다소나마 참고가 되기를 소망한다. 임상의사로서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산실에서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희열을 느끼기도 했지만, 전쟁터나 병원에서 체험한 죽음의 슬픔과 허탈감 또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비 오는 밤 설악산 정상에서 목격한 젊은 병사들의 장렬한 죽음 앞에서, 그리고 4.19혁명 때 병원 응급실에서 죽어가는 젊은 학생들의 절규 앞에서 숙연했던 순간들은 내가 인생을 살아오는 데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나는 젋었을 때 환자들 옆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면서 항상 의료와 환자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경제적 장벽 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었다. 그리고 의료가 지향하는 목적을 가시적으로 바라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도 많을 것을 생각하기도 했다. 빈곤의 비참함, 사회정의와 인권, 생활환경과 건강과의 관계 등 많은 과제들이 나에게는 도전과 좌절을 함께 가져다 주었다. 나는 의사로 살아오는 동안 의학의 한계를 여러 차례 통감했으며, 세월이 흘러갈수록 인생과 의학을 종교적 차원에서 생각해ㅈ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 정치는 해방 후부터 파란의 연속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정치질서를 뒤흔들었다. 일제시대의 식민통치에 이어 미군에 의한 군정, 권위주의적인 정치, 4.19 후의 민주화와 혼란, 5.16과 제3, 4공화국 시대의 명암(明暗), 제5공화국의 폭정(暴政), 다시 민주화가 태동했던 제6공화국, 그리고 문민정치시대 등으로 아마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정부형태 중에서 왕정을 제외하고는 모든 종류의 정치환경 속에서 나는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권력을 빼앗기면 실세들이 감옥에 가거나 유배되던 과거의 역사가 현대에 와서 되풀이되는 것도 여러 번 보았다. 이런 와중에서 내가 큰 탈없이 13여년 간에 걸쳐 정치활동을 할수 있었던 것은 퍽 다행한 일이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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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신군부에 의한 공포정치가 시작되었다. 나는 정치정화법에 의해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는데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지역구 사정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는데, 아마 나의 지역구 기반을 과대평가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나는 신군부정권과는 타협을 위한 접근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장기간의 정치공백이 생겼고, 정계복귀의 꿈을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도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정치공백 기간 동안 의협회장 일에 정열을 쏟았고, 마침내 세계의사회장으로 선촐 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참으로 다양한 길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6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전에도 여러 번 얘기가 있었던 보건사회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이로써 나는 의사로서 염원해왔던 의료와 환자간의 경제적 장벽을 허무는데 모든 정열을 쏟을 수 있었으며, 마침내 1989년 7월 1일에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醫療保險制度)을 완성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으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임기동안에 20세기의 인류의 염원인 “모든 사람에게 건강을”이라는 목표에 접근할 수 있어서 더욱 감회가 깊었다. 

나는 일생을 통해 여러 가지 책임을 맡아 일할 기회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만사에 적극적으로 임함으로써 맡은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해왔다고 자부하고 싶다. 그러나 돌이켜볼 때 많은 부분에서 단견과 판단착오를 드러내었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당혹하게 했고, 피해를 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편, 좋은 선배, 친구, 동료들의 따뜻한 지원과 보살핌이 없이는 내가 추구했던 일들을 이룩할 수 없었으리라고 믿고 있다. 

인생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면과 고통스러운 면을 함께 경험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상만을 쫓다가 좌절한 일도 있었고, 또 어떤 때는 현실과 너무 타협했다고 생각되는 일도 있었다. 일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 가지 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여러 가지 일에 과욕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때는 부끄럽기도 하다. 

끝으로, 나는 내가 존경하고 나를 아껴주는 친구와 선배들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사랑하는 따뜻한 가족과 더불어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회고록을 쓰면서 느낀,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이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덮어주었고, 또 인생을 즐겁게 해주었다는 것을 아울러 밝힌다. 

1997. 1.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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