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처음 만나는 나를 뱃놈이라고 불렀다. 부산 지점에서 본사로 옮겨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의 처가 쪽 혼사 자리에서였다.
성근 머리칼 아래로 툭 튀어나온 넓은 이마에 콧등이 펑퍼짐한 그의 터수가 나보다 열 대여섯은 위로 보였다. 아내가 자기의 이종오빠라고 소개하면서 그의 투박한 터치에 대한 내 반응을 살피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의 뱃놈이라는 호칭에 별 거부감이 없었다.
웃고 있는 그의 표정에 무슨 악의 같은 것이 묻어 있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어차피 항해나 해운 분야에 문외한일 그의 실없는 소리에 꼬투리를 달 이치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에도 그와 나는 자주 만났고, 그럴 때마다 그는 흠씬 손아래인 내게 “어이 뱃놈, 서울에는 뭣 하러 왔어?”라는 것이 인사였다. 회식 자리를 마주하면서도 예의 한마디를 무슨 화두처럼 툭 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고는 알 듯 모를 듯한 눈웃음을 흘리면서 술만 마셨다. 그러다가 드넓은 이마와 뭉툭한 코끝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쯤이면 온다 간다는 표식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모 여자 대학에서 미술평론을 강의하고 있다는 그에 대한 평판이 무성했다. 그의 평론은 프랑스의 ‘예술지’로부터 극찬을 받았을 정도라고도 했고, 그의 외국어 실력은 세계문학전집의 웬만한 작품쯤은 작가의 모국어로 읽는 편이 이해가 빠를 만큼 대단하다고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의 평론은 지극히 관념적인데다 논조마저 신랄해서 국내의 작가들이 진저리를 친다느니, 정식 교수도 아닌 주제에 몇 푼 되지도 않는 봉급으로 술만 마신다는 등의 지적들도 있었다.
달관의 눈빛 같기도 하고 냉소 같기도 하면서 장난기가 가득한 그의 웃음에는 어떤 매력 같은 것이 있었고, 그에 대한 내 호기심은 마주앉는 횟수만큼 짙어져 갔다. 그것은 그에 대한 호감과 오기가 섞여 있는 감정이었다. 주위의 평판도 짚어 보고 싶었지만, 만날 때마다 뱃놈, 뱃놈 하는 그의 호언만은 반드시 찔러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좀체 오지 않았다.
어느 가을이었다. 그날은 가평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평일인데다가 거리도 만만찮아서 대부분의 하객들은 부인을 동반하지 않았다. 그도 나처럼 혼자였다. 내가 둘만의 자리를 제의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흡족한 웃음으로 화답해 왔다.
그와 나는 명지산 쪽 계곡으로 들어가서 물가에 평상처럼 꾸며진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도토리묵, 파전에 표주박 막걸 리가 몇 순배 돌고 나서 내가 말문을 열었다.
“형님, 뱃놈이 뭔지 잘 아십니까?”
그는 기색조차 바꾸지 않은 채 무관심한 듯 내뱉었다.
“잘 몰라. 넌 알아?”
이번에는 내가 말문을 닫아 버렸다. 막상 한적한 장소에서 마주 앉고 보니 당초의 내 의도가 부질없는 것 같아서였다. 흔쾌히 동반해 준 그의 호의가 도리어 고마웠고, 정적에 싸여 있는 계곡의 가을빛이 더없이 다감스러웠다.
막걸리 뚝배기가 두어 개 비어 났을 때 그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래, 대학에서 4년을 전공하고 국제 공인의 면허까지 취득한 오늘의 항해사는 무식하고 천박한 전통적 뱃놈들과 다르다는 말이지?”
그의 느닷없는 파적이 조금 당혹스럽긴 했지만 기왕에 터진 물꼬라면 지켜보기로 했다.
“선원은 무역전선의 첨병이며 항해사는 민간 외교관이고 말이야. 허긴 그랬지. 외국을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것은 선원들의 특전이었으니깐. 오죽했으면 미국을 보고 싶었던 시인 박인환이 해운공사 소속 남해호의 사무장으로 승선했을까…….”
그의 콧등과 이마는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일등항해사의 화물 수취증으로 선하증권이 발행되고 선장의 항해지휘권은 신성불가침이지. 그런 선장의 급료는 소속회사 사장의 그것보다 훨씬 더 높고 말이지.”
내가 항복을 하듯 두 손을 들어 올려 그의 열변을 중지시키고는 잔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술만 마셨고, 나는 나대로의 상념에 젖어들면서 잔을 비워 갔다.
그는 내가 항복을 해도 좋을 만큼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전이 되어 버린 사실들이었다. 제4의 국방으로까지 숭상되던 상선 선대가 철저한 상업주의 속으로 함몰되어 버린 탓이다.
오늘의 상선은 편의에 따라 국기를 바꿔 달고 선적항을 바꾸며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외국 선원들까지도 서슴없이 승선시킨다. 끝없는 속도 경쟁은 대양 횡단의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고, 컨테이너로 획일화된 화물은 항구의 정박 기간을 날짜에서 시간 단위로 단축시켰다.
그런 과정에서 항차의 이익만을 도모해야 하는 선장은 기업의 하수인으로, 천체 대신 계기판만 살피면 되는 항해사는 고속도로의 운전수로 전락해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