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주교님은 내가 신학교 부재반 때 윤리신학을 가르쳐..
전주교구 원로신부(전주 금암성당 주임신부 역임) 서석구 "네 분의 주교님을 모심" (42화)
한공열(베드로) 대주교님 나는 신학교 초년기 때 전주교구장으로 계시던 한공열 주교님을 뵈었다. 그때 주교님과 함께 여름방학 때 신학생들과 냉면을 먹던 일이 생각난다. 당시는 귀한 음식이었고, 주교님과 함께 하는 자리라서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前 동국대 교수, 동국대 부총장 최상범 "명예제도와 조경용어" (78화)
명예제도(Honor system)  미국에서 교환교수로 1년간 지내면서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감명 깊게 느낀 것이 있다면 바로 ‘명예제도(Honor system)’일 것이다.  강의실 앞쪽 벽에 학교 마크가 붙어 있는 포...
김화내과의원 대표원장, 수필가 김화숙 "못 생긴 여자는 없다"(4화)
뉴욕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의 박진배 교수는 조선일보에 〈화장의 역사를 바꾼 두 여인〉이란 제목으로 아래 내용의 글을 게재하였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워 페인트(war paint)〉라는 뮤지컬은 1920년대부터 1960년대를 풍미했던 화장품...
수필가, 한일상선 대표 김문호 "오도암(悟道庵)" (8화)
홍 형,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노천명 시인이었던가요? 언젠가 말씀을 드린 바 있는 오도암에 왔습니다. 함께 와 보고 싶었지만 자칫 금년마저 넘길세라 혼자서나마 달려왔습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오도암 옛 자리에 와 있습니다. 그간 암자...
前 서울대의대교수, 고려대 구로병원장, 서울아산병원장 민병철 "오너의 병원에 대한 애정" (51화)
나는 우선 병원 동관 18층에 의사들이 식사도 하고 회의도 할 수 있는 고급식당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워킹런치(working lunch)를 할 수 있도록 10인석과 15인석을 만들고 홀에는 20개 정도의 테이블을 준비시켰다.  이 식당은 한강과 잠실대교를 바라볼 수 있...
前 예술의전당 사장, 세종문화회관 사장, 단국대석좌교수 이종덕 "싸나이라 부르고 싶은 그 사람" (16)
차범석 (극작가) 이종덕 씨의, 아명은 ‘쫀득이’였다.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왔으니 말투에 아직 일본말 투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뒤늦게 들었을 때 ‘쫀득이다’라는 형용사가 떠올랐다. 음식을 먹을 때 쫀득거린...
한국소형영화협회 회장, UNICA 한국본부장 장찬주 "연재를 마치고"
지난밤 꿈을 꾸었다. 고향 마을 금곡천에서 어린 시절 벗들과 벌거숭이 꼴을 한 채 한껏 신이나 멱을 감는 꿈이었다. 초여름 아스라한 미풍에 청보리가 춤추고 멀리 매미 소리가 들리던 평화로운 꿈이었다. 그 여운이 하루 종일 마음에 따스하게 남아 있다. ‘...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예비역 육군중장 차기문 "영원한 삶을 위한 리더십 요체"
무욕즉강(無慾即强), 욕심을 버리면 그것이 바로 강하게 되는 것이다. 욕심을 버려라. 바둑을 둘 때 대단히 유리한 국면에서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역전되는 경우가 많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
前 호주 CLAY&CERAMICS 회사 연구소장, 중앙대 교수 임남웅 "교수로 임용되어 16년 여 강단에 서고" (70화)
1992년 3월 첫 주에 나는 첫 수업을 시작했다. 아직도 교수가 아닌 교수자격으로 교단에 섰지만, 마치 내가 전임교수인 걸로 착각될 만큼 열과 성의를 다해 강의했다. 오랜만에, 그것도 20여 년 만에 강의를 하니 모르는 것도 많고 사실 자료도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디트로이트 머시 대힉교 국제금융학 교수 김석희 "연재를 마치며"
떠나온 고향으로 가고파 금의환향하겠다고 나 자신에게 굳은 약속을 하고 고향 반곡리를 떠난 지도 덧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어느덧 60년이 흘러갔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고향은 바로 그리움이다. 나를 비롯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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