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 대한 절절(折節)의 참회록이 내겐 낯설었다...
수필가, 한일상선 대표 김문호 "어른들의 사랑" (35화)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고향집으로 내려갔더니 동생이 누런 서류용 대형 봉투 하나를 말없이 밀어주었다. 겉봉에 ‘위급할 때는 이것을 열어 봐야지’라고 붓글씨로 적혀있었다. 성복(成服)을 마치고 나서 뜯어 봤더니, 같은 지질의 중형 봉투 하나와 규격 편지봉투...
김화내과의원 대표원장, 수필가 김화숙 "뮌스터 또 다른 면" (42화)
2010년 8월, 독일의 북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시, 뮌스터에서 세계여자의사 학술대회가 열렸다. 지금도 그 도시를 생각하면 숲속의 신선한 향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수백 년을 지켜온 아름드리나무가 하늘을 뒤덮고 가지마다 싱싱한 푸른 잎은 계절을 알려주고 있었다...
전주교구 원로신부(전주 금암성당 주임신부 역임) 서석구 "어려운 것은 싫어" (68화)
어려운 것은 싫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장수군 수분리라는 곳에서 몇 년 간 살았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장수읍내까지는 8km가 넘는 먼 거리였기 때문에 아이들이 취학할 나이가 되어도 길이 멀어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집 사랑방에 서당...
前 예술의전당 사장, 세종문화회관 사장, 단국대석좌교수 이종덕 "사람을 끌어 들일 줄 아는 매력" (17_마지막회)
한상우(음악평론가) 내가 이종덕 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의 가형(가형)과 동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종덕 형을 형으로 예우한다.  종덕 형은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표정이든 그 표정 안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미는 항상 변함이...
前 서울대의대교수, 고려대 구로병원장, 서울아산병원장 민병철 "휴식과 운동, 그리고 산탄테르 피아니스트" (58화)
나는 미국과 영국을 오가면서 딸아이를 가르칠 스승을 찾아다녔다.  1977년, 딸아이는 영국의 마리아 커쇼 다이아몬드(Maria curcio diamond)로부터 오디션을 받았다. 생전 처음 보는 곡을 연주하는 테스트를 거쳐 딸아이는 런던의 퍼셀 스쿨(Purcell School,...
前 동국대 교수, 동국대 부총장 최상범 "우리 고장의 주요 문화유산" (85화)
가운리 고인돌 전시장    남양주 고인돌이 가운리, 삼패리, 지금리, 금남리, 진중리 등 다섯 군데에서 발견되었으나, 거의 훼손되거나 수중으로 묻히게 되었다.  그 중에서 교통이 편리하고 접근이 용이한 곳은 가운리에 남아 있는 고인돌이다. 남...
한국소형영화협회 회장, UNICA 한국본부장 장찬주 "연재를 마치고"
지난밤 꿈을 꾸었다. 고향 마을 금곡천에서 어린 시절 벗들과 벌거숭이 꼴을 한 채 한껏 신이나 멱을 감는 꿈이었다. 초여름 아스라한 미풍에 청보리가 춤추고 멀리 매미 소리가 들리던 평화로운 꿈이었다. 그 여운이 하루 종일 마음에 따스하게 남아 있다. ‘...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예비역 육군중장 차기문 "영원한 삶을 위한 리더십 요체"
무욕즉강(無慾即强), 욕심을 버리면 그것이 바로 강하게 되는 것이다. 욕심을 버려라. 바둑을 둘 때 대단히 유리한 국면에서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역전되는 경우가 많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
前 호주 CLAY&CERAMICS 회사 연구소장, 중앙대 교수 임남웅 "교수로 임용되어 16년 여 강단에 서고" (70화)
1992년 3월 첫 주에 나는 첫 수업을 시작했다. 아직도 교수가 아닌 교수자격으로 교단에 섰지만, 마치 내가 전임교수인 걸로 착각될 만큼 열과 성의를 다해 강의했다. 오랜만에, 그것도 20여 년 만에 강의를 하니 모르는 것도 많고 사실 자료도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디트로이트 머시 대힉교 국제금융학 교수 김석희 "연재를 마치며"
떠나온 고향으로 가고파 금의환향하겠다고 나 자신에게 굳은 약속을 하고 고향 반곡리를 떠난 지도 덧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어느덧 60년이 흘러갔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고향은 바로 그리움이다. 나를 비롯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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