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유전적 인자가 일차적이나 추가 성장은 환경적..
김화내과의원 대표원장, 수필가 김화숙 "키 크는 주사" (27화)
인턴 시절, 수술 방에서 보조 의사로 수술을 하는데 키가 작은 나는 수술 침대가 너무 높아 발판을 놓아야 했다. 수술이 끝날 무렵, 선배 외과 선생님이 말했다. “김 선생은 다 좋은데 한 가지 단점을 찾았어. 말해도 될까?” 나는 긴장한 나머지 작은 목소리...
낙화암이 천인단애(千仞斷崖)일리 없고, 좁은 백마강은..
수필가, 한일상선 대표 김문호 "부여 여정(餘情)" (24화)
따뜻한 봄날에 동무들과/ 백제의 옛 서울 찾았더니/ 무심한 구름이 오락가락/ 바람은 고요히 부는구나 어린 날, 누나들을 따라다니면서 귀동냥으로 익힌 노래다.  앞산이 이마를 칠 듯 가까운 두메마을이었다. 사월이면 뼘 자란 보리밭 물결 위로 노고지...
전주교구 원로신부(전주 금암성당 주임신부 역임) 서석구 "키 작은 예수님" (62화)
나는 노래방 체질인가 언제부터인가 거리에 노래방 간판이 나돌더니, 요새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즐비하게 붙어있다.  처음에 나는 호기심으로 신자들과 노래방을 가게 되었는데, 정말 신기했다. 곡명을 누르면 멋진 반주가 나오고, 자막의 노랫말과 배경...
前 서울대의대교수, 고려대 구로병원장, 서울아산병원장 민병철 "휴식과 운동, 그리고 산탄테르 피아니스트" (58화)
나는 미국과 영국을 오가면서 딸아이를 가르칠 스승을 찾아다녔다.  1977년, 딸아이는 영국의 마리아 커쇼 다이아몬드(Maria curcio diamond)로부터 오디션을 받았다. 생전 처음 보는 곡을 연주하는 테스트를 거쳐 딸아이는 런던의 퍼셀 스쿨(Purcell School,...
前 동국대 교수, 동국대 부총장 최상범 "우리 고장의 주요 문화유산" (85화)
가운리 고인돌 전시장    남양주 고인돌이 가운리, 삼패리, 지금리, 금남리, 진중리 등 다섯 군데에서 발견되었으나, 거의 훼손되거나 수중으로 묻히게 되었다.  그 중에서 교통이 편리하고 접근이 용이한 곳은 가운리에 남아 있는 고인돌이다. 남...
前 예술의전당 사장, 세종문화회관 사장, 단국대석좌교수 이종덕 "싸나이라 부르고 싶은 그 사람" (16)
차범석 (극작가) 이종덕 씨의, 아명은 ‘쫀득이’였다.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왔으니 말투에 아직 일본말 투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뒤늦게 들었을 때 ‘쫀득이다’라는 형용사가 떠올랐다. 음식을 먹을 때 쫀득거린...
한국소형영화협회 회장, UNICA 한국본부장 장찬주 "연재를 마치고"
지난밤 꿈을 꾸었다. 고향 마을 금곡천에서 어린 시절 벗들과 벌거숭이 꼴을 한 채 한껏 신이나 멱을 감는 꿈이었다. 초여름 아스라한 미풍에 청보리가 춤추고 멀리 매미 소리가 들리던 평화로운 꿈이었다. 그 여운이 하루 종일 마음에 따스하게 남아 있다. ‘...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예비역 육군중장 차기문 "영원한 삶을 위한 리더십 요체"
무욕즉강(無慾即强), 욕심을 버리면 그것이 바로 강하게 되는 것이다. 욕심을 버려라. 바둑을 둘 때 대단히 유리한 국면에서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역전되는 경우가 많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
前 호주 CLAY&CERAMICS 회사 연구소장, 중앙대 교수 임남웅 "교수로 임용되어 16년 여 강단에 서고" (70화)
1992년 3월 첫 주에 나는 첫 수업을 시작했다. 아직도 교수가 아닌 교수자격으로 교단에 섰지만, 마치 내가 전임교수인 걸로 착각될 만큼 열과 성의를 다해 강의했다. 오랜만에, 그것도 20여 년 만에 강의를 하니 모르는 것도 많고 사실 자료도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디트로이트 머시 대힉교 국제금융학 교수 김석희 "연재를 마치며"
떠나온 고향으로 가고파 금의환향하겠다고 나 자신에게 굳은 약속을 하고 고향 반곡리를 떠난 지도 덧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어느덧 60년이 흘러갔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고향은 바로 그리움이다. 나를 비롯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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