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는 생각할 여지 전혀 없이 배부른 소리로 치부..
前 환경청장, 국제디자인대학원대학교 총장, 사랑의녹색운동본부명예총재 박판제 "환경청장에 취임"(72회)
'조물주의 손을 떠날 때는 모든 물체가 다 선(善)이었으나, 인간들의 손에 옮겨지면 모든 것이 망가져버린다. 인간은 갑지(甲地)에다 을지(乙地)의 산물을 생산하려고 강요하거나, 병(丙)나무에다 정(丁)의 나무에 열매를 맺게 하려고 강요한다. 기후도 자연의 장소도...
예술원회원,연출가(중앙대 교수,예술대학장 역임)김정옥 "노.."(22회)
그 사이 파죽지세로 평양과 원산, 흥남을 점령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진격하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중공군의 개입은 예측되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겨우 일 년 전에 장개석 군대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했...
목사(전 CBS 사장,현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재단이사장)권호경(32회)
이와 같은 상황은 빈민조직 선교운동을 하려는 우리의 힘을 빠지게 했다. 민중의 의식화와 조직화를 통한 빈민조직 선교운동은 국민의 기본권이 박탈되고 정치적 자유가 없는 독재정권 아래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런 이유로 빈민조직 선교를 하기위해서는 정치적인...
이화여대, 성신여대 교수,학장 이범준(1933.-2011.) "항암.."(128회)
귀국 직후 김의신 박사가 소개한 아산병원의 이정신 박사를 찾아갔다. 마이토마이신에 대해 이 박사는 독성이 강하기는 하나 아브르지즈 박사가 추천했다면 한번 맞아보자고 했다.  오랜만에 서울에 왔기 때문에 3월 28일, 새천년 포럼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
前 한국원자력기술 부사장, 미국 Central Connecticut주립대 객원교수 김진휴 "동생들.." (146회)
백부님 내외분은 동생들에게 공평하려고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다. 둘째 할머니 아들들이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데모를 했을 때 조부님과 담판을 하던 백부님은 배다른 동생을 괄시하면 ‘두고두고 집안의 화근이 됩니다.’ ‘통촉하시옵소서!’ 하며 간곡히 할아버님을...
문학평론가(경주대총장,동리목월문학관장 역임)장윤익 "서울.."(36회)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과, 12.12신군부 쿠데타사건 이후 서울의 분위기는 프라하의 봄과 같은 민주화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연일 계속 된 서울의 학생데모는 전국 대학으로 번져가서 대학의 학사는 방향타를 잃어버린 혼란으로 이어졌다.  ...
성악가 강상복 (대한오페라 단장, 한국성악회장 역임) "맺는말"
나의 수상 경력   나는 그동안 사회 여러 분야에 관여하면서 각종 상과 공로패 감사패 또는 위촉장 추대장 등을 받은 바 있다. 그 중에는 아마도 나의 전공분야로 받은 문화상이 가장 보람이 있는 상이라고 생각되어 그 내용을 다음에 기록하고 그 외 수상 내용을...
아나운서(해태타이거스단장,코래드사장 역임) 박종세 "처음.." (39회)
처음 서울에 온 북한 적십자 대표 1972년 9월, 북한 적십자 대표 일행 54명이 서울에서의 적십자회담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가는 실황을 중계방송하기 위해 나는 판문점으로 향했다.  남과 북이 지금은 금강산이다, 개성공단이다, 경제회담이다, 체육관...
서울법대 교수, 법무장관, 학술원 회원 황산덕(1917-1989) "편집후기"
아버님 회고록을 편집하면서 태어나면서부터 신동소리를 들으며 자란 아버님은 일제 말기의 식민체제하에서 시작한 유년기를 거쳐 청소년이 될 때까지 남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아버님은 8・15 해방, 대한민국 정부수립, 6・25 전쟁과 남...
前 이수화학,전엔지니어링,전인터내셔널 회장 전민제 "커다란 참나무"
오빠는 커다란 참나무 전옥제 | 막내동생 내가 민제 오빠를 생각할 때, 나는 커다란 참나무를 떠올린다. 그는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도움이 필요할 때 항상 옆에 있었다. 사실 그는 내게 오빠 이상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쭉 그래왔듯이 지금도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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