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잘 되어 다행이라고 안심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前휘문고 교사, 부산 외국어대학교 교수 김응모 "불알친구 오한익"(25회)
하나님은 친구에게 또 하나의 큰 시련을 주셨다. 위암이다.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좋다는 약을 구하여 복용하였다. 수술 후 5년을 무사히 넘기면 된다는데 금년까지가 고비이다. 위암수술을 받았으니 조금씩 자주 식사를 해야 하고, 그 좋아하던 소주는 한잔도 ...
미래복지경영 이사장,함께 하는 사람방 이사장 최성균 "대학.."(21회)
1969년 2월 대학을 졸업한 나는 3월부터 성남교회 사회부 간사로 취직이 되어 들어갔다. 교회사회사업으로 사회복지 일생의 첫발을 딛게 된 것이다.  성남교회 주변의 서울역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지게꾼이나 리어카꾼들도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서울역 주변...
연세대 교수,국회의원,보사부장관 문태준(1928-2020) "학.."(18회)
학생교육은 수련의교육에 못지 않게 나에게는 중요한 과제였다. 1960년 초에도 옛날과 같이 교수가 강의를 하면 학생은 이를 받아 적는 식의 구식교육방법이 계속되었다. 대학교육은 학생은 책을 읽고, 교수는 강의를 통해 지식의 흡수를 자극하고 정리해나가는 것을 도...
서울대 농대 교수,전북대특임교수 김재욱(1926-2010) "구.."(44회)
1986년이 되었다. 국제교육친선협회 편으로 나의 회갑을 기념하여 구라파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아내를 포함하여 12명이 일행이다. 일행 중 부부가 함께 가는 것은 우리를 포함하여 3쌍이었다. 1월 13일 13시 50분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나리타공항, 앵커리지 공항에 내렸...
문학평론가(경주대 총장,동리목월문학관장 역임) 장윤익 "꽃.."(37)
꽃보다 아름다운 인연  장영길  <동국대학교 국문과 교수, 국제 언어문학회 총무이사> 우리는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된다. 물론 그 인연은 때에 따라 호연일수도 있고 악연일수도 있다.  흔히 사람들은...
아나운서(해태타이거즈 단장,코래드사장 역임)박종세 "고향.."(64회)
고향 같은 청운동(靑雲洞)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나는 서빙고 신동아아파트에서 지금 살고 있는 청운동(靑雲洞)집으로 이사를 했다.  6.25전 경복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종로구(鐘路區)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불광동, 압...
목사(전 CBS 사장,현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재단이사장) 권호경"에필"
에필로그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이사야 42:2~3) 내가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동안 이 성경구절처럼 목...
전 서울대 교수, 화가, 예술원회원 장우성(1912-2005) "후기"
자존(自存)  나는 이 책의 원고를 쓰기 위해 붓을 들기까지 많이 주저하고 망설였다. 첫째, 자기 이야기를 제 손으로 쓴다는 것이 쑥스러웠고 둘째, 많은 사람들과 연관된 일들을 얼마나 정확하고 진실 되게 쓸 수 있겠느냐 하는 두려움과 셋째, 문필가가 아닌...
前 서울대 총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권이혁 "기행(紀行)"(186회)
서울대 총장 재임 시였던 1983년 8월에 처음으로 피지를 방문했다. 8월 7일부터 2주일간 피지를 비롯하여 파푸아뉴기니, 호주, 뉴질랜드 등 4개국을 여행하였는데 호주 외의 3국은 처음 가는 나라였다.  이 여행은 당시 우리나라 주재의 UNDP대표였던 ‘부니봄...
前 한국원자력기술 부사장, 미국 Central Connecticut주립대 객원교수 김진휴 "가족"(190회)
우리 내외(內外) 모두 외부로만 돌고 자식들을 보살필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모두들 온전하게 성장해서 가장(家長)으로, 주부(主婦)로 그리고 Business Lady로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축복이요, 감사할 따름이다. 큰 사위 노광국(盧光國)은 안과의사(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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