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하고 나오니 중앙대학교에서 근무하던 둘째 형이..
미래복지경영 이사장, 함께 하는 사람방 이사장 최성균 "군복무와 복학"(18회)
나는 매일같이 계속되는 구타에 탈영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를 달랠 수가 있는 것은 편지를 쓰는 일뿐이었다. 나는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는 편지를 박경용 목사님이나 친구들에게 보내면서 심신을 달래야 했다. 그러다 나는 어쩐 일인지 군종과로 재배치 받았다....
서울대 농대 교수,전북대특임교수 김재욱(1926-2010) "손.."(41회)
손 쉬운 장류제조법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조미식품의 하나인 간장, 된장, 고추장은 옛날부터 전해오던 재래식으로 담구어 왔으나 근래에 와서 이것을 과학화시켜 개량식으로 담그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개량식도 그것은 만드는 중간제품인 메주에 해...
前휘문고 교사,부산 외국어대학교 교수 김응모 "종로.."(21회)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 싸우고 싸워서 세운 이 나라 동포여 일어나라 자유를 위해...... 목이 터지도록 노래를 불렀다.  강산에 빼난 정기 온 누리에 떨쳐라 고대건아 가는 곳에 대적할 자 누구냐 천지를 흔들어라, 붉은 피 솟구치는 날래고 ...
연세대 교수,국회의원,보사부장관 문태준(1928-2020) "세.."(15회)
신경외과가 신설되었다는 소문이 나자 환자들이 줄을 이어 몰려와 나와 일반외과에서 파견된 수련의와 인턴으로 구성된 팀은 몹시 바쁘게 움직이게 되었다.  미국에서 신경내과를 공부하고 돌아온 서석조 교수와 훗날 대통령 주치의로서 애석하게 아웅산에서 ...
문학평론가(경주대 총장,동리목월문학관장 역임)장윤익 "이론.."(36)
이론의 당간지주 펄럭이는 평가의 깃발    김선학 <문학평론가, 동국대학교 교수> <자의식 문학과 난해의 한계성>은 장윤익 선생이 197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평론이다.  이상(李箱)의 시 세계를 정면으로 다...
아나운서(해태타이거즈 단장,코래드사장 역임)박종세 "고향.."(64회)
고향 같은 청운동(靑雲洞)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나는 서빙고 신동아아파트에서 지금 살고 있는 청운동(靑雲洞)집으로 이사를 했다.  6.25전 경복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종로구(鐘路區)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불광동, 압...
목사(전 CBS 사장,현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재단이사장) 권호경"에필"
에필로그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이사야 42:2~3) 내가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동안 이 성경구절처럼 목...
전 서울대 교수, 화가, 예술원회원 장우성(1912-2005) "후기"
자존(自存)  나는 이 책의 원고를 쓰기 위해 붓을 들기까지 많이 주저하고 망설였다. 첫째, 자기 이야기를 제 손으로 쓴다는 것이 쑥스러웠고 둘째, 많은 사람들과 연관된 일들을 얼마나 정확하고 진실 되게 쓸 수 있겠느냐 하는 두려움과 셋째, 문필가가 아닌...
前 서울대 총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권이혁 "기행(紀行)"(186회)
서울대 총장 재임 시였던 1983년 8월에 처음으로 피지를 방문했다. 8월 7일부터 2주일간 피지를 비롯하여 파푸아뉴기니, 호주, 뉴질랜드 등 4개국을 여행하였는데 호주 외의 3국은 처음 가는 나라였다.  이 여행은 당시 우리나라 주재의 UNDP대표였던 ‘부니봄...
前 한국원자력기술 부사장, 미국 Central Connecticut주립대 객원교수 김진휴 "가족"(190회)
우리 내외(內外) 모두 외부로만 돌고 자식들을 보살필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모두들 온전하게 성장해서 가장(家長)으로, 주부(主婦)로 그리고 Business Lady로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축복이요, 감사할 따름이다. 큰 사위 노광국(盧光國)은 안과의사(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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